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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 인류의 역사(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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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Rebecca 작성일26-03-03 08:33 조회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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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그린스왑투자 현대 화폐 14장 돈, 진화 경제의 에너지원 요제프 로트의 소설 엉터리 저울추. 현재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끼어 있던 오스트리아 제국의 갈리치아에서 시작. 소설의 주인공인 아이벤쉬츠는 오스트리아가 나라 전체에서 화폐와 도량형을 통일하려고 새로 도입된 십진법을 현장에 정착시키는 업무를 맡았다. 하지만 오랫동안 서로 거래가 있었던 지역 주민에게 십진법 도입은 번거로운 일 일 뿐이었다. 그들에게는 관료들의 영업방해일 따름이었다. 19세기는 돈과 도량형도, 과학과 마찬가지로 추측과 평판에 의존하던 방식에서 정확성과 객관성의 방향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였다. 오스트리아 제국의 십진법이 원동력을 얻게 된 것은 상당 부분 해밀턴의 혁명기 미국 덕분이었다.미국 달러는 세계 최초로 완전한 십진법 화폐로 1792년 해밀턴이 주도한 주화법을 통해 공식화되었다. 영국과 단절하고 싶고 흔적을 지우고 싶었다. 다임은 10분의 1이라는 뜻의 옛 프랑스어보수주의자들은 본질적으로 과거지향적이며 다가올 미래를 포용하기보다 과거에서 정당성을 찾는다. 하지만 혁신이 주도하는 과학의 세계에서는 전통이 해를 끼치는 경우가 많다.혁명기 미국이 화폐 십진법을 도입했다면 혁명기의 프랑스는 그것을 광적으로 받아들였다.프랑스혁명력에서는 1주일이 7일에서 10일로 바뀌었고, 이를 데카드라 불렀다. 하루는 10시간이었고, 1시간은 100분, 1분은 100초였다. 1년은 여전히 12달이었지만 10월에 시작되었다. 달력에 종교 축일이나 로마 황제들, 신에 대한 언급이 모조리 삭제정확한 측정을 가능케 해주면서 결국 생산성까지 올라갔기 때문에 기계공, 기술자, 상인들 역시 미터법에 큰 매력을 느꼈다. 영국은 군주제 국가답게 완강하게 저항했지만 다른 대부분 나라들은 미터법 수용하고, 미국 및 프랑스처럼 화폐나 측정 단위를 수용하게 된다.화폐의 십진법 도입은 더 많은 사람들이 숫자에 익숙하도록 만들었고, 숫자에 익숙한 사람일수록 측정에 기반한 과학적 발견을 더 쉽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었다. 인간이 쓰지 않던 뇌 부위를 이때부터 쓰게 되었다.십진법 도입 이전에 보통 사람들은 파딩이나 기니(과거 영국에서 사용되던 화폐 단위, 상류층에서 썼던 돈) 같은 단위를 가지고 계산했으며, 여러 종류의 동전들과 차이를 깊이 이해하기보다는 수량만으로 계산했다.다윈에게 자연선택 개념을 선사한 것은 경제학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식물과 동물의 습성을 관찰하면서 어디에서나 생존경쟁에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 덕분인지 그 책(맬서스 인구론)을 읽는 순간 이러한 상황에서 유리한 변이는 보존되고 불리한 변이는 제거될 것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맬서스 ‘자연적 억제’ 기근, 질병, 전쟁, 자연재해 등 인구과잉을 막기 위해 나타나는 자연적인 장치들. 다윈은 이를 발전시켜 자연선택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맬서스 함정이 오기 전, 농부들은 단일 식물 또는 제한적 종류의 작물 재배에 의존하면서 점점 늘어나는 인구에게 주식을 제공하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몇 안 되는 작물에 의존하게 되어 생존 가능성이 취약해진다. 바로 이 현상이 1840년대 아일랜드 대기근 때 일어난다.다윈이 가장 주목한 점은 토지 생산력의 한계에 직면했을 때 인간이 행동을 수정한다는 내용이었다. 이것이 바로 아까 말한 자연적 억제 중 하나다. 이런 억제 행위를 통해 환경에 적응하는 종은 살아남을 것이고, 적응하지 못하는 종은 멸종할 거라는 것이었다.아일랜드 인구는 1841년 800만 명에서 1941년 400만 명 이하로 떨어졌다. 행동 수정이 생존의 열쇠였다. 1850년대 약 99만 명의 아일랜드 사람이 미국으로 이주했는데, 이는 그 시기 미국으로 이주한 전체 이민자 중 83%를 차지한다.맬서스는 대도시에서 전염병이 훨씬 더 자주 발생해서 많은 사람들이 몰살당할 거라 예측했다. 이와 동시에 인간들은 사회적 거리두기, 격리 같은 행동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진화론은 종교뿐 아니라 사회 위계질서까지 흔들어 놓았다. 자연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라면 사회가 정체되어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 모든 혁신에는 자금이 필요했다. 과학에 대한 열기가 거대한 투자를 이끌어낸 것이다.영국에 도착했을 당시 인도의 GDP는 전 세계 소득의 30%에 달했지만 영국이 떠날 무렵에는 그 비중이 3% 미만으로 떨어져 있었다. 1857년 민중항쟁 이후 영국은 전략을 바꾸어 인도 일부 사람들에게 뇌물을 먹여 식민 지배가 인도에 의롭다고 믿게 만들었다. 영국은 인도인의 세금으로 철도를 놓고 도서관 몇 개를 세우며 우리는 인도에 문명을 전하고 있다고 홍보했다. 실제로는 인도는 영국보다 4천년이나 앞선 문명을 가진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보여주기식 사업을 하면서 봄베이라는 항구도시를 세우고 인도 국부를 빼돌렸다.영국은 거대한 도시 델리의 행정을 맡으면서 식민지배의 효율성을 홍보할 수 있는 거라 기대했다. 코브라 보상금의 역작용. 코브라는 돈이 경제를 움직인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경제는 거대하고 예측 불가능하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다. 건강한 경제는 활기차다. 활기는 넘칠수록 좋다. 경제는 진화하는 동안 이런저런 역경에 처하는데 다양성이 가장 뛰어난 지역이 성공한다. 왜냐하면 그런 지역은 한 가지에만 의존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세계에서 단일 재배는 매우 위험하다. 다양성은 더 많은 선택권, 더 많은 조합, 더 새로운 상업적 교류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돈이 많을수록 위험도 감수할 수 있고, 다양성도 커지며 경제는 더 빠르게 진화한다.돈은 이 새로운 세상의 연료이자 결정권자였다. 어떤 제품이나 회사가 돈을 번다면 살아남을 것이고, 벌지 못하면 도태될 것이다. 15장. 피묻은 돈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은 베트남전쟁 동안 젊은 암살자 윌라드가 메콩강을 따라 커츠 대령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다. 원작 작가는 요제프 테오도르 콘라드 코제니오푸스키 즉 조지프 콘래드로 알려져 있다. 1899년 발표한 그의 중편소설 ‘어둠의 심연’은 벨기에의 국왕 레오폴드가 주장한 자유무역지대의 잔혹한 현실을 폭로했다.로저 케이스먼트가 콘래드를 만나기 2년 전인 1888년 그는 기욤 반 케르크호번이라는 벨기에 장교를 만났는데, 이 인물은 막사 주변에 말뚝에 꽂힌 잘린 머리들을 장식에 내걸 정도로 잔혹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커츠 대령과 정확히 일치한다.북아일랜드의 던롭은 5살짜리 아들이 울퉁불퉁한 자갈길 때문에 자전거 타기가 너무 힘들다며 불평하는 소리를 들었다. 던롭은 고무 타이어에 공기를 주입해 바퀴에 맞게 끼우면 자전거의 승차감이 좋아질 것이라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1526년 스페인 정복자들이 원주민 포로들과 함께 카디스 항구로 가져오면서 고무는 처음으로 유럽에 소개되었다. 반노예 인사들은 카디스 궁정에 이 인디언들의 지성과 세련됨을 보여주기 위해 그들에게 울라말리츠틀리, 축구의 전신이라는 공놀이를 시연해 달라고 요청했다. 양 팀은 엉덩이, 가슴, 허벅지만 써서 경기장 양 끝에 있는 아치형 골대에 골을 넣어야 했다. 스페인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선수들의 몸놀림보다 공 자체였다. 이렇게 공이 통통 튀는 모습을 스페인어로 묘사하고 싶어도 단어 자체가 없었다.아마존의 뒤를 이을 전 세계에서 아마존과 기후가 비슷한 다른 지역이 딱 한 군데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서아프리카 콩고강 주변 생태계였다.던롭은 공기압 타이어 특허권을 다국적 기업에 팔았는데, 그 기업이 그의 이름을 따 던롭산업이라고 그린스왑투자 사명을 짓는 바람에 그는 고무타이어로 유명하게 되었다.19세기가 되자 식물의 약용 및 산업적 특성이 세계화를 움직이는 동력이 되었다. 용감하고 온순한 과학자처럼 묘사되는 식물학자는 실제로는 제국주의의 앞잡이인 경우가 더 많았고, 겉보기에 평화로워 보이던 식물원조차 식민주의의 연구소 역할을 했다.산업혁명 시기 열화학기술 발전은 식물학의 경제적 위치를 더욱 높여주었다. 예를 들어 고무에 황을 첨가해 단단하게 만드는 가황공정은 세계경제에서 고무의 역할을 획기적으로 바꿔 놓았다. 이로써 고무를 전선용 절연 및 방수 튜브로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던롭의 발명 이후 유럽과 미국의 중산층은 열광적으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자전거는 말보다 저렴했고, 시간표대로 움직이는 기차에 비해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했다. 자전거 열풍과 함께 마을 간 혼인사례가 크게 증가했다. 그 결과 유전적 다양성도 함께 늘어났다. 자전거를 타는 여성은 이 발명품이 몰고 온 사회적 충격을 상징했다. 보수주의자들에게 자전거는 금기를 깨는 기계, 즉 여성들이 독립을 주장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1890년대 미국 특허청에 출원된 특허의 3분의 1이 자전거와 관련된 것이었다. 19세기 후반에 등장한 중산층이 여유 자금으로 자전거를 살 뿐만 아니라, 이전에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던 저축도 하기 시작했다.이 시기에 돈을 가장 벌기 좋은 곳은 식민지였다. 1차 세계화 시대. 던롭의 발명품으로 촉발된 새로운 글로벌 공급망은 맨체스터의 여성 참정권 운동가를 코번트리의 자전거 제조업체, 셰필드의 철강업체, 벨기에령 콩고의 고무 납품업체들과 연결해 줬다. 영국 국민의 총 저축액의 3분의 1이 머나먼 타국에 있는 기업과 사업에 자금을 조달했다. 이 말은 상류층과 중류층 대부분이 식민지 사업의 재정적 공범이 되어 이익을 챙겼다는 뜻이다.영국, 프랑스, 독일 정부는 아프리카 나머지 지역을 나눠 가지느라고 바쁜 와중에 충돌을 피하기 위해 레오폴드의 콩고 영유권 주장을 묵인했다. 유럽의 완충국인 벨기에도, 아프리카에서도 프랑스, 영국의 식민지와 독일의 새로운 식민지 사이에 일종의 완충국 역할을 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이 점이 콩고가 레오폴드 2세의 사유재산이 된 경위이기도 하다.영국인 존 토마스 노스 대령과 함께 1892년 세계에서 가장 수익성이 높은 회사 중 하나가 될 앵글로-벨기에 인도 고무 및 탐사회사 ABIR 설립, 피와 똥, 죽음이 난무하는 지옥 같은 환경에서 현지 주민 수십만 명을 잔인하게 노예로 부린 한 회사가 한순간의 금융마법으로 깨끗한 재무제표와 정돈된 주식 문서로 변신했다. ABIR은 콩고 자유국이라 불리던 방대한 영토의 일부 지역에서 고무 무역의 면허권을 팔았다. 이 면허권을 구매하면 마링가-로포리 분지 내 숲에서 생산되는 모든 자원을 30년 동안 독점적으로 착취할 권리를 얻었다. 벨기에 정부는 이들이 원주민들을 통제할 수 있도록 총기 탄약 군인들을 제공했다. 고무 채취에는 많은 시간과 강도 높은 노동이 필요했지만, 다이아몬드나 광물 같은 천연자원과 달리 자본투자가 거의 없었고 노동자에게 특별한 훈련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순이익은 컸다. 고무회사들은 무장한 사병들을 동원해 이 땅을 대량 학살터로 바꿔버렸다. 1885-1908년 콩고 인구의 절반, 즉 500만-1000만 명 정도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민병대의 대부분은 술에 취해 폭력을 일삼던 현지인들로 채워졌다. 이들은 예산 낭비를 막기 위해 총알을 쓸 때마다 그 총알이 위험한 현지인을 죽이는 데 쓰였다는 증거를 제출하라고 명령했다. 증거는 사망한 자의 손이었다. 1890년대 내내 로저 케이스먼트는 영국 통상부를 위해 아프리카 현지에서 정보를 수집했다. 1898년 그는 영국 영사라는 새로운 직책을 맡아 콩고에서 급증하고 있는 잔학행위를 정부에 보고하고 있었다. 당시 직장을 그만두고 각종 기사와 소책자를 통해 콩고의 실태를 폭로하던 모렐과 만남던 레어리 온천- 오늘날 케이스먼트의 동상에 자랑스럽게 서 있다.아서 코난 도일은 두 사람의 만남을 근대사의 가장 극적인 장면이라고 평하기도 했다.세기가 바뀔 무렵 고무산업은 여전히 세계 경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고, 이제 업계는 고무 채취가 아니라 고무재배산업, 즉 플랜테이션으로 이동 중이었다. 플랜테이션은 훨씬 더 간단하고 깔끔한 사업이었다. 열대기후, 평평한 지형, 그리고 일할 의사가 있는 노동자만 있으면 그만이었다. 이런 이상적인 조건을 갖춘 곳이 동남아시아, 특히 영국령 말라야(말레이시아)였다는 것은 놀랍지 않다. 콩고 고무산업이 문을 닫게 되면 다른 공급처를 찾아야 했고, 말라야는 그에 딱 맞는 후보지였다. 게다가 1899-1902년 보어전쟁과 남아프리카에서 영국군의 잔혹행위 때문에 런던 이미지는 크게 훼손된 상태였다. 자신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 다른 큰 사건을 부각시키는 것은 가장 고전적인 홍보전략이었고, 케이스먼트의 콩고 보고서는 바로 그 목적에 딱 들어맞았다. 케이스먼트는 영국의 기사 작위를 받았다. 아일랜드 민족주의에 동조했던 그는 1911년부터 반영국적인 글을 썼고 외교관직을 그만두었다. 독일 잠수함을 타고 아일랜드로 돌아오던 그는 베를린 지하철 티켓이 검문에 걸려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의 일기장이 유출되었는데 그가 젊은 남성들과 성관계를 가졌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하얀 일기장은 공개될만한 내용, 검은 일기장은 사적) 검은 일기장은 여론을 돌아서게 해 케이스먼트의 운명을 결정했다. 교수형에 처해졌다. 인도 청년 자와할랄 네루는 더블린에서 의학을 공부하던 사촌을 보러 왔다가 우연히 아일랜드 민족주의 운동에 대해 알게 되어 케이스먼트의 메시지에 큰 감명을 받는다. 1947년 초대 수상이 된다. 레닌은 식민주의를 자본주의의 절정이라 보았다.페이비언주의- 혁명적인 변화보다 점진적인 개혁을 통해 사회주의를 실현하려는 사상모든 시대나 이념은 이미 자기 안에 파멸의 씨앗을 내포하고 있다. 16장 노란 벽돌길 오즈의 마법사의 숨은 뜻. 19세기 말 디플레이션에 빠진 미국을 금본위제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대중운동을 은유적으로 담고 있다. 사악한 마법사 오즈는 엘리트 은행가의 화신이자 온스의 기호인 OZ에서 알 수 있듯 금을 상징한다. 노란 벽돌길은 금괴로 만들어진 길, 즉 금본위제 자체를 상징한다. 도로시는 캔사스 출신 농부의 딸로 지리적으로 미국의 정중앙이자 미국의 평범한 서민층을 가리킨다. 허수아비는 농산물 가격하락으로 혹사당하는 중서부 농부를, 양철 나무꾼은 임금이 하락한 산업 노동자를 나타낸다. 이들의 고통은 금본위제에 따른 디플레이션에서 비롯되었다. 겁쟁이 사자는 1895년 대선에서 민주당과 인민당의 연합후보였던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을 상징한다.도로시와 그녀의 친구들, 즉 일하는 미국인들은 에메랄드시티에 들어가기 전 초록색 안경을 쓰라는 명령을 받는다. 이는 에메랄드 시티를 운영하는 금융인들이 이들에게 돈을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라고 강요한다는 뜻이다. 마법사를 만족시키기 위해 서쪽 마녀를 물리쳐야 한다. 서쪽은 미국 중서부, 즉 농업의 중심지이자 인민주의 운동의 발원지를 뜻한다.에메랄드 시티에 당당하게 입성하지만 그들이 마법사를 가면을 벗는 순간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영화에서 도로시의 구두가 빨간색이지만, 원작 소설에서는 은색이다. 캔사스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은색 구두의 뒤꿈치를 맞부딪치기만 하면 된다. 이는 은본위제를 상징한다. 문제의 해결 열쇠는 이미 그녀가 갖고 있다는 뜻이다. 좀 더 광범위한 은본위제가 필요하다는 그린스왑투자 정치적 메시지가 들어있다.정치권과 금융 기득권층은 혁명기에 지폐를 남발했던 사건이 엄청난 사회불안을 야기했기 때문에 이를 극도로 경계했다. 그러다 보니 금본위제가 그런 위험을 막아줄 최후의 보루라 여겼다. 화폐가치를 금에 연동하는 체제에서는 금이 항상 부족하듯 화폐도 늘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이런 시스템은 이미 돈을 많이 가진 사람들에게 유리하다. 1873년 미국은 달러를 금에 연동시켰다. 미국이 금본위제는 1848년 캘리포니아 금광 발견으로 큰 전환점을 맞게 된다. 은이 금보다 저렴했기 때문에 미국 정부는 더 많은 화폐를 발행하면서 경기부양정책을 쉽게 펼칠 수 있었다. 금본위제는 필연적으로 디플레이션을 유발한다. 디플레이션이 오면 누가 가장 이득일까? 물론 이미 금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즉 금융업 종사자들, 돈을 거래하거나 원자재에 투기하는 사람들, 다시 말하면 통장에 저축액이 가장 많은 사람들이 가장 유리해진다. 저축액이 가장 많았던 사람은 부자들이었다.화폐가 금에 연동되어 있어 공급이 부족해지면 건설이나 설비 등 투자가 필요한 곳에서는 자금을 어떻게 융통해야 할까? 정답은 바로 신용이다. 은행시스템은 신용대출을 위한 조정을 진행한다. 그러면 신용대출이 급격히 팽창해지면서 자산 가격을 끌어올리게 된다. 일부 투기계층과 임금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은 더욱더 벌어지게 된다. 2008년 이후 대부분 서구 경제에서도 이와 비슷한 메커니즘이 발생했다. 중앙은행이 시중은행에 매우 저렴한 신용대출을 공급했고, 이들이 다시 신용도가 높은 고객들, 이미 부동산 같은 자산에 투자하고 있던 부유층에게 대출해줬다. 그 결과 자산 가격은 임금보다 훨씬 빠르게 상승했다.1870년대 후반 유럽에서는 이상기후가 발생하면서 흉작이 이어진다. 밀이 부족해지자 유럽에서는 밀 값이 급등한 반면, 대서양 건너편 미국에서는 전 세계를 먹여 살릴 수 있을 정도로 대풍작이 들었다. 밀이 비싸게 유럽으로 팔릴 때 금은 반대로 미국으로 흘러 들어왔다. 이듬해 펜실베이니아에서 석유가 발견되면서 미국의 금 보유량은 더욱 늘어났다. 시간이 갈수록 미국에는 더 많은 사람이 도착했고, 이 때문에 1인당 금 보유량은 점점 악화되었다. 가난한 계층은 화폐 유통량을 늘릴 수 있도록 은본위제로 돌아가기를 바랐다. 반대로 부유층은 금본위제가 유지되기를 원했다. 1896년 민주당의 대선 슬로건은 금 대신 은이였다.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 노동자 이마에 가시관을 세우지 말라. 인류를 금으로 된 십자가에 못 박지 마라. 1830년대 루이지애나 은행은 10달러짜리 지폐를 발행했다. 프랑스어로 디스 dix 라고 불렸다. 영어 사용자들은 x를 강하게 발음하면서 딕스라고 발음했다. 딕스의 영향력은 골드러시 기간 중 급격히 커졌다. 캘리포니아에서 채굴된 금이 처음으로 들어오는 항구가 뉴올리언스였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캘리포니아 산 금을 배에 실어 남미 최남단 혼곶을 돌아오는 것이 훨씬 더 저렴했다. 뉴 올리언즈에 금이 많이 쌓일수록 지폐 발행도 늘었다. 남부연합은 딕시랜드라 불리게 되었다.자금을 계속 끌어들이기 위해 북부연합 정부는 채권에 투자한 대출자들에게 이자를 금화로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반면 군인들에게는 지폐로 급여를 지급했는데 나중에 그린백이라 불리게 되었다. 남부의 모든 자원이 전쟁에 투입되면서 물가는 폭등했다. 전쟁이 끝난 뒤 남부연합 정부가 사라졌기 때문에 남부 채권자들에게 돈을 갚을 주체가 없어졌다. 북부연합 정부는 남부연합이 발행한 차용증 상환을 거부해 남부는 파산 상태가 되었다. 형식적으로 자유를 얻었지만 흑인 해방노예들은 1880년대부터 점차 도입된 인종차별적인 짐 크로법의 지배를 받게 된다. 전쟁에서 패하고 노예제가 폐지된 이후 가난해진 남부의 백인들이 오히려 흑인들에게 더 큰 폭력을 쏟아냈을지도 모른다. 반면 월스트리트는 호황을 맞이했다. 소스타인 베블렌은 1899년 베스트셀러 유한계급론을 통해 신흥 부유층의 과도한 소비에 대해 얘기했다. 그는 월스트리트가 사치에 빠져 있을 때 농촌 지역은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이 책에서 고발했다.철도 붐 덕분에 교통이 편리해지자 수백만의 에이커의 땅이 농지로 바뀌었고, 그 결과 옥수수와 밀의 공급이 늘어나면서 가격이 하락했다. 금본위제로 운영되는 달러로 빚을 졌는데 금의 가치는 계속 올랐고 농산물 가치는 계속 떨어졌다. 농민들은 대량 구매자들을 상대로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협동조합 형태의 농민연맹을 조직한다. 조직 강령은 세 가지였다. 첫째, 철도회사의 권한 축소, 둘째, 빚에 시달리는 농민들을 위한 연방정부의 대출 지원, 셋째, 통화개혁이었다. 여기서 통화개혁이란 해밀턴 시대 은화를 금화와 함께 다시 도입해 화폐공급을 늘리고 빚을 진 사람에게 상환 기회를 주라는 것이었다.1892년 멀리 아르헨티나에서 채권 불이행 사태가 시작되었다. 파급경로는 금본위제였다. 아르헨티나 투자로 수천만 파운드 손실을 본 베어링스 은행을 구제하기 위해 영국 중앙은행은 금이 필요했다. 이들이 금을 끌어 모으기 위해 금리를 인상하자 전 세계 금이 영국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그 결과 미국도 신용경색이 발생해 기업들이 도산하고 실업률이 20%가 치솟는다. 정부가 농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외면하자 결국 농촌 사람들이 워싱턴으로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인민당 정치인 제임스 콕시는 콕시의 군대라 불리는 시위대를 조직해 워싱턴으로 행진했다. 1894년 미국 역사상 최초로 일어난 이 대규모 시위의 요구사항은 두 가지였다. 첫째, 실직자들을 고용해 공공 인프라 구축에 투입하라는 것, 둘째, 금본위제를 은본위제로 바꾸라는 것이었다. 1856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대혼란이 벌어졌다. 민주당 의원들은 자신의 현직 대통령을 버리고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후보였던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을 대통령 후보로 선출했다. 인민당과 손잡은 제닝스 브라이언은 뛰어난 연설로 인기를 모았지만 결국 공화당 후보 윌리엄 맥킬리한테 패했다. 금본위제에 맞선 미국 대중의 혁명은 일단 그렇게 막을 내렸다.1896년 원주민 여성 샤오틀라 부부는 알래스카 유콘강 지류에서 금을 발견했다. 콜로라도와 남아프리카에서 광대한 금맥이 발견된 데다 클론다이크 금맥까지 더해져 그 후 10년 동안 세계 금 보유량은 2배 가까이 늘었다.금본위제는 주로 공화당을 지지하는 금융 및 기업 엘리트의 입장이었고, 은본위제로 통화량을 늘리자는 주장은 민주당을 지지하는 노동자 계층의 입장이었다.전쟁에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기 때문에 금본위제를 고수했다가는 안보가 위협받을 수 있어 1차대전으로 금본위제는 일시 중단되었다가 대공황 때 유명을 달리했다. 금본위제는 1929년 대공황 이후 신용경색을 초래하며 대혼란을 일으켰고, 결국 1936년 루스벨트 대통령이 폐지하면서 역사에서 퇴장했다.신문 기자 프랭크 바움의 작품이 오즈의 마법사. 1937년 루스벨트가 금본위제를 폐지하고 1년이 지났을 때 디즈니 첫 장편 애니메이션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가 흥행에 성공했다. 대공황기 미국에는 현실을 잊을 수 있게 해 줄 판타지가 필요했고, MGM은 바움의 동화 판권을 사들였다. 테크닉 컬러(미국의 테크닉컬러사가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적색, 녹색, 청색이라는 3색 테크닉컬러 기법을 개발한 뒤 컬러영화가 발전)로 촬영된 첫 영화였다. 17장 자본과 아이디어가 흘러넘치는 시대 1858년 다윈이 철도주식 폭락으로 큰 돈을 날린 지 몇 년 후, 오스만제국의 술탄은 이스마엘 파샤를 총독으로 임명한다. 그는 고대국가인 이집트를 근대사회로 혁신시키기 위해 인프라 그린스왑투자 사업을 계획했고, 자금조달을 위해 자본시장에 눈을 돌렸다. 그의 업적은 1863년 시작한 수에즈 운하 건설이었다. 수에즈운하는 공학적 성과이기도 했지만 금융의 산물이기도 했다. 수에즈운하는 프랑스에 등록된 회사가 전액 민간자본으로 조달한 것으로, 그 금융구조는 본질적으로 스왑거래였다. 이 회사는 주식을 팔아 자금을 모았고, 그중 일부를 이집트 정부에 넘기는 대신 회사 운영권과 수익 권리를 받았다. 이집트는 지분 44%를 보유했고, 56%는 프랑스 회사가 보유했다.1858년 트리에스테 출신의 자수성가한 사업가 파스콸레 레볼텔라는 부유한 트리에스테 시민들의 자금을 이 프로젝트에 투자하기 위해 파리로 향했다. 레볼텔라는 수에즈운하 국제회사의 부회장으로 임명되었다.1880년부터 1910년까지 30년 동안 전 세계 증권거래소 절반이 새로 생겨났다. 도시들은 앞다투어 증권거래소를 세웠는데 건물들은 주로 신고전주의 양식이었다. 원주 기둥과 삼각형 모양의 박공, 웅장한 계단이 어우러져 마치 현대판 금융의 신전처럼 보였다.이 시기에 새로운 유형의 잡지 즉 경제 전문지가 등장한다. 1840년대 창간된 이코노미스트사람들은 숫자의 의미를 해석하면서 금융은 점점 숫자 이상의 해석과 통찰이 필요한 분야가 되어 갔다. 그야말로 금융 열풍이 불었던 것이다. 카톨릭을 국교로 삼던 오스트리아 군주정은 민족주의가 다민족 국가에 위협이 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18세기에 이미 종교적 관용에 대한 칙령과 관용 칙령을 통과시켰다. 19세기 말 트리에스테는 진짜 인종의 용광로가 되었다. 전 세계 다양성이 섞이는 코스모폴리탄적 도시가 탄생한 배경에는 자본이 있었고, 그 중심에는 항구도시를 움직이는 상인세력이 있었다. 이들은 마치 중세시대의 상인 다티니 같았다. * 프란체스토 디 마르코 다티니 : 책 ‘프라토의 중세상인’의 주인공. 피렌체 인근 프라토 출신으로 자신의 재산과 책, 기록물을 보존하도록 유언하고 프라토시에 기부. 사적인 기록, 문서와 편지가 보존되어 학자들의 중세연구의 보고가 됨. 프라토문서고. 상업도시에는 단순히 상인이나 중개인만 모이는 것이 아니다. 상업이 번성하면 예술가, 작가, 사상가들도 함께 모여든다. 제임스 조이스는 트리에스테에 머무는 동안 여러 직업을 전전했는데, 그중 하나가 레볼텔라 상업학교에서 영어와 비즈니스, 편지 쓰기를 가르치는 일이었다. 유럽의 작가, 예술가, 사상가들은 모더니즘이라는 새로운 흐름을 받아들이며 기존의 전통과 규칙을 깨뜨리고 있었다. 과거 작품의 흉내에서 벗어나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 예술을 만드는 방식, 세상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 자체를 새롭게 바꾸려 했다. 엄격했던 19세기 도덕주의의 무거운 분위기는 가고 이제 활력이 넘치는 시대가 도래했다. 금기는 사라졌다.오스트리아 수도 빈은 이 움직임의 중심축이었다. 활력이 넘치는 도시에서는 늘 상업과 예술이 나란히 짝을 지어 꽃을 피운다. 중세 피렌체에는 상업, 금융과 르네상스 미술이 있었고, 17세기 암스테르담에서는 네덜란드 상인의 황금기와 거장들의 예술이 함께 했다. 예술과 상업의 혁신은 슘페터가 말한 질풍처럼 밀려오는 창조적 파괴의 대표적 사례다. 이 모든 과정의 동력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인간의 탐구심이다.상업적 에너지 분출을 완벽하게 보여주는 지표는 바로 특허다. 독일에서 한 해 동안 등록된 특허 수는 1900년 8784건에서 1913년 1만 3520건으로 50% 증가했다. 독일, 프랑스, 영국을 합친 연간 특허등록 수는 1905년 3만 4893건에서 1913년 4만 6086건으로 1/3이 증가했다. 유럽 경제는 놀라운 속도로 진화하고 있었다. 미국에서는 변화의 속도가 더 빨랐다. 미국 특허출원 건수는 1900년 3만 9673건에서 1913년 6만 8117건으로 급증했다.영화광이었던 조이스는 동생의 말을 듣고 사업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아일랜드에 영화관을 열면 크게 성공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는 자신은 한 푼도 투자하지 않고 지분과 수익의 10%를 받기로 파트너들을 설득해냈다. 율리시스를 쓴 그 사람은 아일랜드의 최초의 영화관을 설립한 사람과 동일 인물이다. 더블린에서는 누군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면, 특히 그가 외지에서 성공해서 돌아온 사람이라면 절반쯤은 그가 실패하기를 바란다. 가만히 그곳에 남아있던 사람들의 무기력함이 더 도드라져 보여서일까?예술가였든 사업가든 창조적인 사람은 자기 생각이 뚜렷하고, 그 생각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대중의 비웃음을 감수할 만큼 용감하다. 성공은 언제나 먼저 시도한 사람에게만 주어지기 때문에 이들의 삶은 본질적으로 불안정하다.비평가와 달리 예술가와 사업가는 본질적으로 낙관주의자다. 그들은 미래를 믿어야만 한다. 이성은 때로 비관적일지라도 낙관이라는 의지로 그것을 이겨내는 것이다.저 호텔, 저 공원, 저 철도, 세상은 누군가의 열정이 만들어낸 거대한 박물관이다.(스트라이프의 공동창업자 존 콜리슨)피렌체에서 마인츠, 암스테르담, 트리에스테까지 생각의 자유를 폭넓게 허용한 도시일수록 혁신의 힘이 강하게 작용했다. 이념에서 자유로워질수록 경제는 성장한다. 중요한 것은 혁신가의 숫자가 아니라 그들을 대하는 사회의 태도다. 대중이 이들을 응원하고 지지해 주면 사회는 더욱 앞으로 나아간다. 결국 대중 심리가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일반적으로 창의력, 관용, 상업은 톱니바퀴처럼 함께 돌아간다.율리시스의 주인공 레오폴드 블룸은 조이스가 살던 트리에스테에서는 어쩌면 자연스럽게 어울렸을 법한 인물이지만, 조이스는 그를 더블린이라는 도시로 데려가 완벽한 이방인으로 창조해 냈다.이제 곧 유럽은 암흑에 빠질 것이고, 관용은 편협으로, 평화는 전쟁으로, 낙관주의는 절망으로 바뀐다. 18장 절망의 구렁텅이 헤밍웨이는 켈에서 가장 좋은 호텔의 5코스 식사가 150마르크, 즉 캐나다 돈으로 고작 15센트밖에 되지 않았다고 적었다. 프랑스 아이들은 몰래 국경을 넘어 케이크를 배터지게 먹었다. 환율이라는 기적 덕분에 스트라스부르의 아이들이 독일 제과점으로 몰려가 먹다 먹다 탈이 날 정도로 케이크를 퍼먹는 추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국민이 법을 지키면 국가가 국민을 지켜주겠다는 약속, 국민의 돈을 저축하면 국가는 그것을 지켜주겠다는 약속, 화폐가 무너지면 이 약속은 사라지고 결국 국가는 무너진다.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 사이에서 미세하게 균형을 잡는 것이 자유주의 사회의 책무다. 바이마르 공화국은 출범 초기 그 책임을 져버렸다. 스스로 포기했다기보다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렸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당할 것이다.전쟁이 계속되는 동안 미국은 수십억 달러를 빌려줬을 뿐 아니라 유럽 자산을 헐값에 대거 사들였다. 이렇게 해서 세계의 화폐권력은 런던에서 뉴욕으로 넘어간다.1918년 영국 총선 유세기간 중 총리 로이드 조지는 씨가 튀어나올 때까지 독일을 레몬처럼 쥐어 짜겠다고 공언했다.1920년대 독일이 배출한 노벨상 수상자의 수가 미국과 영국을 합친 것보다도 많았을 정도였다. 전쟁 전 독일은 성실함과 규율, 질서를 상징하는 나라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독일이 재기에 성공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독일 상황은 근본적으로 달라져 있었다. 첫째, 독일은 국민 대부분이 막판까지도 이기고 있다고 생각했던 전쟁에서 패했다. 승전국인 프랑스와 벨기에가 국토의 일부를 점령당했던 반면 독일 땅에는 외국 군대가 한 발짝도 침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믿기 힘든 현실 덕분에 등에 칼을 맞았다는 음모론이 득세했다. 민족주의로 뭉친 독일군이 패배한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자, 자유주의자, 자본가 및 유대인 같은 내부의 적들이 배신했기 때문에 전쟁에서 패했다는 주장이었다.최종 합의안에 따르면 독일은 매년 자국 GDP의 5%를 외국 열강에 넘겨야 그린스왑투자 했다. 실제로 배상금을 지불한다는 것은 국가경제 안에서 생산된 실물자원을 외부로 내보내야 한다는 뜻이다. 이 과정에서 독일은 그 대가를 금이나 외환의 형태로 돌려받지 못했다.바이마르 정부는 자유주의적 중도노선을 지키려 했지만 양극단 세력에 의해 끊임없이 공격받았다. 한쪽은 소련의 영향을 받은 공산주의자로, 이들은 정부가 연합국의 이익을 위해 독일 노동자를 배신하고 있다고 믿었다. 다른 한쪽에는 구체제의 민족주의자인데 연합국의 하수인 노릇을 하며 독일 민족을 팔아넘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양극단 세력은 허약한 바이마르 정부의 거액 지출을 요구했다. 한쪽에서는 노동자 교육을, 한쪽에서는 제대군인을 위한 전쟁연금을 요구한 것이다.1922년 6월 기업가이자 유대인 출신 외무장관이었던 발터 라테나우가 우익세력에 의해 암살 당했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독일을 위해 협상에 나서려 할까?1923년 초 독일은 프랑스에 전화선용 전신주 10만 개를 보내기로 했으나 약속을 다 지키지는 못했다. 프랑스와 벨기에 군대가 루르지방에 와 독일의 산업중심지를 장악했다. 이후 봄 내내 독일 여성을 타깃으로 한 성폭행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프랑스 입장에서는 점령을 통해 독일로부터 현물 배상을 받아야지 했지만, 점령 이후 10개월 동안 받은 석탄과 코크스 양이 점령 이전 10일 동안 받은 양보다 적었다.독일인들은 프리츠 랑의 영화 마부제 박사를 보기 위해 극장으로 몰려들었다. 주인공 마부제 박사는 최면술사로 주가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증시를 조작하는 초자연적인 악당이다.라프케. 탐욕스러운 투기꾼 혹은 졸부 속물을 뜻하는 이들은 경멸과 동시에 매혹의 대상이 되었다.혼란 속에서도 피해가 가장 적었던 것은 최상층과 최하층이었고, 사회의 중심축인 중산층이 가장 피해를 입었다.살로몬 살리 스몰리아노프는 작센하우젠 강제수용소라는 지옥에 떨어져 있었다.뛰어난 위조공은 절반은 레오나르도 다빈치, 절반은 구텐베르크가 되어야 했다. 즉 화가이자 인쇄공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젊은 경제학자 리처드 래드퍼드는 포로수용소에서 포로들이 공통화폐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던 것을 목격했다. 적십자는 수용소에서 나오는 기본식사 외에 추가식량을 배급했다. 담배는 필수였고, 잼과 버터, 차와 당밀, 꿀, 고기, 소금에 절인 소고기, 연어, 스팸, 초콜릿, 소금, 후추, 비누, 해시브라운, 우유분말, 야채통조림 등도 배급되었다. 실제 돈은 없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포로들은 담배를 교환수단이자 재산의 형태로 사용하고 있었다. 포로수용소 경제도 실제 경제와 마찬가지로 호황과 불황, 디플레이션과 인플레이션이 반복되는 경기와 신용사이클을 똑같이 겪었다. 적십자는 포로수용자의 중앙은행 역할을 했고, 매달 25-50갑의 담배를 배급하며 화폐 공급을 조절했다. 사람들이 낙관적으로 되어 소비하려는 의지가 강할 때는 돈에 대한 수요도 활발해지고, 시중에 풀린 돈은 더 많은 거래를 만들어낸다. 반대로 사람들이 미래를 걱정하게 되면 지출을 미루고 돈을 쌓아두려 한다. 기회가 올 때를 기다리며 지갑을 닫는 것이다.스몰리아노프와 나머지 팀원의 목숨은 영국 지폐가 어떤 재질로 만들어졌는지를 밝혀내는데 달려 있었다. 위조팀은 마침내 낡은 옷감을 갈아서 만든 펄프지가 재질이라는 사실을 알아낸다. 위조범들은 당시 유통 중이던 파운드화의 40%에 해당하는 액수를 찍었다. 1943년 전세가 악화되자 독일은 더 이상 폭격기를 동원할 수 없게 되어 위조지폐를 투하하지 못했다. 나치 친위대는 위조한 파운드화로 꼭 필요한 전쟁물자를 살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주머니도 채울 수 있었다.스레드니들가의 노부인(영국 중앙은행의 별칭)은 이 위조지폐의 정교함을 크게 우려한 나머지 기존 5파운드짜리 지폐를 전면 폐기하고 완전히 새로운 디자인을 도입하기에 이른다. 5부 인간의 손을 떠난 돈 19장 누가 돈을 통제하는가?명목화폐 fiat money의 fiat는 라틴어로 그렇게 되게 하라는 뜻이다.수천 년 전 수메르인들은 셰켈의 가치를 곡물 한 줌으로 결정했고, 모두가 그것을 인정했다. 리디아인들은 금을 사용했는데 이는 금의 화려함과 희소성 때문이었다. 그리스인들은 금보다 은을 선호했고, 로마인들은 금과 은을 다 사용했다.결국 군비 증강에 열망했던 닉슨 대통령은 금본위제를 포기한다. 이때부터 달러를 발행하고 그 가치를 유지하는 책임은 연준이 맡게 된다. 미국은 고정환율 대신 변동환율을, 금속의 가치 대신 더 유연한 시스템을 선택했다. 이제 화폐의 가치는 한정된 금속이 아니라 경제상황에 맞춰 적시에 대응하고 조절하는 인간의 판단에 맡겨졌다.명목화폐는 리디아인이 인류 최초로 주화를 찍어낸 이래 가장 중요한 혁신이라 할 수 있다. 이제 모든 정부는 물론, 시민들은 귀금속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대개 좋은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는 일보다 나쁜 아이디어를 버리는 일이 더 어려울 때가 많다. 금본위제는 너무 오랫동안 미련 때문에 버리지 못한 나쁜 아이디어 중에 하나였다. 금처럼 고정된 실물자산에 기반된 화폐체제에서 구조적으로 생기는 현상이 디플레이션이라면, 명목화폐 체제 안에서 구조적으로 생기는 현상은 바로 인플레이션이다. 이 체제에서는 경제가 성장하고 돈에 대한 수요가 늘 때마다 화폐 공급량이 늘어나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세계 각 정부는 오랜 경험을 통해 침체된 디플레이션 경제를 다시 살리는 것이 과열된 인플레이션 경제를 진정시키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을 체득하게 되었다.화폐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국가가 부여한 화폐의 가치와 시민들이 실제로 믿는 가치 사이에 차이가 벌어지면 국내자본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때 화폐는 거짓말탐지기처럼 작동한다. 1982년 프랑스 프랑화 투매 사건(1981년 미테랑 대통령 당선 이후 진보정책을 대규모로 실행하자 국제 투자자들이 프랑화를 대량으로 투매한 사건)이후 이길 수 없다면 차라리 같은 편이 되는 게 낫다는 가치관에 따라 대부분 서유럽 국가들은 자국의 화폐를 마르크화에 연동시켰다. 이렇게 자국 화폐 환율을 마르크화에 고정시키면 독일보다 더 빠른 속도로 화폐를 발행할 수 없게 된다. 독일보다 빨리 화폐를 찍어내면 통화량이 늘어나면서 화폐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 전략은 독일 금리가 상대적으로 낮게 유지될 거라는 (물가상승률이 낮게 유지되는) 믿음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1989년 11월 11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이 사건 이후 독일은 대규모 차입을 하게 되고 이 때문에 금리는 상승했다. 게다가 독일 중앙은행은 동독 화폐인 오스트마르크를 도이치마르크와 1대 1로 교환하기로 한 정치적 결정이 초래할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금리를 추가로 인상했다. 독일 금리가 오르면서 다른 나라 금리도 동반상승했고, 이는 서유럽 전역의 금융위기를 촉발했다. 당시 영국은 1980년대 후반 주택시장 붕괴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었다. 영국 재무구조는 너무나 취약해서 높은 금리를 감당할 수 없었다. 1992년 9월 16일 파운드화는 평가절하되며 독일 중심의 환율 체제에서 이탈했는데 이 사건이 바로 검은 수요일이다. 더 이상 마르크와 연동할 필요가 없어지면서 파운드화 가치는 하락했고, 이와 함께 금리도 인하할 수 있었다. 화폐가치 하락은 명목화폐 시스템이 불안정성에 대응하는 방식이다. 이를 금본위제와 비교해 보면 금본위제에서는 화폐 가치가 떨어질 수 없기 때문에 주택시장 붕괴 같은 충격이 있을 때 오로지 실업, 채무불이행, 파산 말고는 해결책이 별로 없다. 하지만 명목화폐 시스템은 훨씬 더 유연하다. 이 때문에 그린스왑투자 경기침체의 충격도 훨씬 덜하고 빨리 끝난다.소국의 통화정책은 매우 까다롭다. 자금의 유입과 유출을 조절하고 국내금리와 환율을 관리하면서도 동시에 물가를 안정적으로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일랜드는 영국과 경제적으로 깊게 얽혀 있었고, 정치적으로는 유럽 대륙과 유대감을 강화하기 위해 애썼다. 한쪽은 영국이라는 말, 다른 한쪽은 독일이라는 말이 같은 방향으로 달릴 때는 그럭저럭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방향이 엇갈리기 시작하면 극심한 고통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아일랜드 중앙은행은 아무도 원하지 않는 펀트화를 매입하는데 외환보유고 전액을 쏟아부으며 맞서기로 했다. 중앙은행은 자본유출을 막기 위해 금리를 무려 101%까지 인상했다. 일반 시민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눈치챘고, 너도 나도 당국보다 한 발 앞서 자동차를 몰고 국경을 넘어가 크리스마스 때 마실 값싼 기네스를 사들였던 것이다. 결국 한 달 뒤 아일랜드는 펀트의 가치를 스스로 낮췄다.이 환율위기에서 내가 얻은 첫 번째 교훈은 시민들은 중앙은행장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똑똑하다는 것이다. 두 번째 교훈은 돈은 국경을 초월한다는 점이다. 모든 나라는 자국의 화폐가 주권을 갖길 원하지만, 돈의 속성은 그렇지가 못하다.이제 돈은 단순히 정부가 찍어내는 종이가 아니라 현대판 브라만 계급인 기술관료가 설계하고 관리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중앙은행 고위관료들은 언론과 금융시장을 상대로 자신의 의도를 감춘 채 일종의 지적 밀당을 벌인다. 이들은 경제를 평가할 때 도덕적 판단까지 좌우한다. 어떤 나라의 재정이 방만하다, 인플레이션이 심각하다고 평가하면 그 나라 경제의 평판과 신뢰도는 떨어진다.명목화폐 시대는 놀라운 번영을 이끌어냈다. 이 시대는 신흥국과 선진국 사이의 불평등을 완화하고 기술혁신이 이루어지는 시기와 놀랍게 맞물려져 있다. 이를테면 중국경제도 글로벌 자금이 투입되지 않았다면 이처럼 빠른 시간 안에 급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1970년대 이후 세계의 문해율은 여성은 61%에서 83%로, 남성은 77%에서 90%로 눈에 띄게 상승했다. 저소득국가 기준 학교에 다니지 않는 여아 비율은 준금본위제의 마지막 해인 1971년 72%였던 것이 2016년 23%로 떨어졌고, 남아는 56%에서 18%로 떨어졌다. 교육수준이 높아지자 여성은 스스로 출산을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금본위제 폐지 이후 저소득 국가에서 여성 1인당 평균 자녀 수는 5명에서 2.4명으로 줄었다. 이렇듯 명목화폐 체제 하에서 높은 경제성장률과 자녀 수 감수는 1인당 소득의 급증으로 이루어졌다.금속 기반의 화폐 체제에서 명목화폐 체제로 바뀌면서 수억 명의 삶이 극적으로 달라졌다. 물론 모든 변화가 명목화폐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기술, 의학, 위생, 교육과 공공정책 확대 등 다양한 요인이 있다. 그러나 이 모든 변화와 발전은 명목화폐 체제 안에서 이루어졌다.쿠심과 수메르인들 시대부터 인류에겐 두 가지 형태의 화폐가 존재했다. 첫째는 곡물 같은 실물화폐, 둘째는 계약 형태의 화폐인데, 우리는 이를 금융이라 부른다. 금융거래에서는 내가 당신에게 빚을 졌고, 당신도 나에게 빚을 졌다는 식으로 금액을 판에 적어두고, 정해진 날짜에 그 계약을 청산한 다음 다시 시작한다. 실물화폐가 필요할 때는 빚을 청산할 때 뿐이었다. 리디아인들이 금화를 도입한 것은 일상적 거래를 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이런 금융거래를 청산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화폐의 두 가지 형태는 금이나 국가의 보증과 같은 실체에 기반한 화폐이고, 또 하나는 상업은행이 만들어내고 상업법에 의해 운영되는 금융이다. 화폐혁신은 주로 신용, 더 넓은 범위로 말하면 금융분야에서 일어난 혁신이었다. 피렌체의 상인 은행가들은 복식부기라는 회계기법을 통해 이 체계를 정교하게 다듬고 확장시켰으며, 이후 네덜란드 상업도시 암스테르담에서는 상업대출이 급격하게 늘어난다. 이 시기부터는 금속 기반 화폐가 아니라 금융이 무역경제를 움직이는 주된 동력이 된다.실제로 은행의 수익성은 자산에서 나오는 수입에 기반하기 때문에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은행 입장에서는 계속해서 대출을 늘리려는 속성이 있다. 중앙은행이 국채를 매입하면 그 대가로 상업은행이 중앙은행에 개설한 계좌에 준비금을 새로 넣어둔다. 이것이 바로 중앙은행 준비금이며, 이는 실제 화폐가 아닌 전자화폐 형태로 되어 있다. 이러한 전자화폐 형태의 지급준비금은 중앙은행만 생성할 수 있고 상업은행만 보유할 수 있으며, 이는 상업은행들 간 거래를 정산할 때 사용된다. 연준 또한 상업은행들에게 자본금 일부를 국채로 보유하라고 요구한다. 이런 규정들은 국채에 대한 수요를 만들어 낸다. 국채 없이는 상업은행이나 기타 금융기관들이 돈의 게임에 참여할 수 없다. 미국 국채는 금융 시스템에 참여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종의 입장권 역할을 한다.상업은행 시스템은 새로운 돈을 만들어내는 허가를 얻게 된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미국 금융 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건 미국 국채의 가격, 더 간단히 말하면 국채 수익률인 것이다. 10년 만기 국채는 다양한 금융자산의 가격을 책정할 때 기준점으로 사용되며, 30년 만기 국채는 미국 주택담보대출(모기지)의 기준금리로 활용된다. 전통이론, 즉 중앙은행이 시장의 경제에 필요한 통화량을 정하고 이를 상업은행에 공급해 그들이 시중에 돈을 퍼뜨린다는 식의 설명은 실제 시스템을 거꾸로 이해한 것이다. 교과서에서 보면 이론은 그럴듯하게 보이지만 현실을 반영하지는 못한다. 실제 상황에서는 상업은행들이 중앙은행을 좌지우지한다.연준은 이 사실을 일반인이 아는 걸 원치 않는다. 이 방식은 세상에서 가장 값진 비밀 중 하나다. 돈을 만들어내는 대형 상업은행들은 비장의 무기를 하나 더 갖고 있는데, 이것은 바로 유로달러 시장이다. 유로달러란 미국이 아닌 해외에서 만들어지는 달러를 말한다. 유로화는 아무 관련이 없다. 유로달러는 2차대전 이후 생겨났는데, 당시 마샬플랜으로 유럽에 달러가 대량으로 풀리면서 시작되었다. 런던과 기타 여러 역외금융지대(금융규제나 세금제도를 피하기 위해 해외에 설립된 느슨한 규제의 금융허브지역)에서 자본시장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면서 유로달러 시장 역시 함께 팽창했다. 중요한 점은 이 유로달러들을 겉으로는 달러처럼 거래되지만, 해외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연준 규제를 받지 않는 점이다.미국 밖에 영업장이 있는 대형 미국은행들의 로비로 인해 연준은 사실상 이들 국제은행들이 더 많은 유로달러를 만들어 오는 것을 묵인했다. 오늘날 유로달러는 국제 금융시장에서 지배적인 통화가 되었다.현재 전 세계적으로 12조 8천억 규모의 유로달러가 유통되고 있다. 반면 미국 본토의 통화 공급량은 20조 달러를 살짝 넘는 수준이다. 즉 미국에서 유통되는 달러의 64%에 해당하는 달러가 해외에서 추가로 유통되고 있는데도 연준은 이에 대해 통제권이 없는 셈이다.우리는 중앙은행이 돈을 경제 안으로 밀어넣는 주체라 알고 있지만, 실제로 이들은 금융시장과 은행이 만들어내는 신용상품에 끌려다니는 존재다. 바꿔 말하면 실제로는 능력도 없으면서 있는 척하는 태도. 이 모순적 상황은 오히려 중앙은행가들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변명만 늘어놓는 존재로 전락시킨다. 20장 돈의 심리학아일랜드도 그랬지만 모든 일의 시작과 끝은 결국 주택입니다.미국에서는 분양 아파트를 콘도미니엄이라 부른다. 이후 줄여서 콘도라고 통일.투자자의 두 가지 유형은 모멘텀 투자자와 가치 투자자. 가치 투자자는 교과서에서는 꽤 자주 등장하지만 현실에서는 극히 그린스왑투자 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사람은 모멘텀 투자자다.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우리는 친구 따라 강남 간다. 무언가 오르고 있으면 모두가 그 흐름에 올라타려고 한다.대출 금액은 일정한 담보가치를 기반으로 정해진다. 이런 방식의 대출을 마진파이낸싱(영미권에서 주식이나 부동산을 담보로 레버리지를 일으켜 투자하는 방식)이라 부른다. 가격이 오르고 있을 때는 이 방식이 가장 유리한 대출 방법이다.저금리는 실패의 대가가 크지 않다는 뜻이므로 기업들은 금리가 높았다면 애초 시도하지도 않았을 스타트업에까지 투자한다. 정부는 수년 만에 처음으로 재정적 흑자를 내고 있었고, 사람들은 수요일 저녁조차 식당 예약이 어렵다며 투덜거렸다.신용주도형 경기상승기에는 세 가지 유형의 차입자가 있다. 첫째, 헤지 차입자. 월별 이자뿐 아니라 원금에 대한 연간 상환액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소득이 충분하다. 둘째, 투기적 차입자. 이자만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원금 상환을 계속 미룬다. 셋째, 폰지 차입자. 자신의 수입으로는 이자도, 원금도 갚을 수 없기 때문에 계속 가격이 오르기만을 바란다. 이들은 자신이 구매한 콘도를 다음 사람에게 되파는 것이 목적이다. 하지만 터무니없이 높아진 가격은 아무 의미도 없다. 이때 이 건축물은 집단적 망상으로만 유지된다. 이런 시점이 되면 시장엔 새로운 패러다임이니 이제는 평가 방식이 달라졌다느니 돈의 개념이 바뀌었다는 식의 그럴듯한 이야기가 떠돈다. 하지만 이때가 바로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아이러니하게 바로 이때 대부분의 초보 투자자들이 무리하게 시장에 뛰어든다. 쉽게 돈을 벌었던 사람들은 가격하락의 일시적인 조정일 뿐이라 치부한다. 오히려 진성 신자들은 이번 하락이 저가 매수의 기회라며 추가 매수에 나선다. 이렇게 이미 시장에 깊이 발 담근 사람들이 더 적극적으로 매수에 나서면서 가격이 반등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무언가 달라졌다. 그 분위기 느낌이 달라진 것이다. 이 같은 마지막 상승장을 불 트랩이라 부른다.신용경색이 발생하면 은행들은 예금 금리를 올린다. 예금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붙잡아두기 위해서다.돈은 인간의 행동을 바꾸고, 인간 행동은 다시 돈을 변화시킨다. 돈은 우리에게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해준다. 대출은 내일의 소득을 끌고 와 오늘 지출에 쓰는 행위이고, 투기는 미래에 얻게 될 수익으로 자신의 이상적 삶을 상상하는 행위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나타난 이 같은 유형의 불황을 대차대조표 불황이라 부른다.양적완화는 2009년 연준이 도입한 새로운 정책이다. 2009년 금리가 아무리 낮춰도 경기가 살아나지 않았다. 케인즈가 말한 유동성 함정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미 빚이 너무 많아서 금리가 아무리 낮아도 더 이상 대출받으려 하지 않았고, 은행들도 부실채권이 너무 많아서 더는 대출해 주려 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를 내려봤자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중앙은행이 시중에 돈을 대거 풀면서 은행에 대출을 하도록 강권해야 한다. 연준은 한 가지 조치를 더 취했다. 은행들이 새로 받은 이 돈을 그냥 쥐고 있거나 저축에 적합한 다른 자산에 투자하지 않고 실제로 대출에 쓰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전통적으로 저축용 자산으로 인기가 높았던 것은 미국 국채 10년물로 항상 적정한 수익률을 제공했다. 연준은 시중은행들이 손대기 전에 이 국채들을 시장에서 직접 사들여 매물을 아예 없애버렸다. 결국 은행들은 새로 생긴 이 돈을 대출로 이용할 수밖에 없었고, 이 돈은 은행이 선호하는 고객들에게 흘러갔다. 이 고객들은 이미 부유한 사람들이었다. 급격히 심화된 부의 불평등은 양적완화의 의도치 않은 부작용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목적이었다. 트럼프와 브렉시트는 양적완화의 흐름 속에서 탄생한 정치적 산물이다. 둘 다 자국우선주의 운동이며, 소외된 사람들의 정서에 호소하고 부의 불평등이라는 연료로 움직인다. 결국 포퓰리즘은 중앙은행에서 태어났다. 서구사회에서는 불평등이 심화할수록 서민들에게는 긴축재정을 강요하면서 은행들은 구제받는 양상이 펼쳐지다 보니 돈을 다루는 기관들과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가 크게 떨어졌다. 21장 돈의 진화더블린의 성 패트릭 대성당에서 2023년 10월 마이클 루이스와 암호화폐를 주제로 토론했다. 자신의 화제작 고잉 인피니트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성당의 설교단은 그 옛날 주임 사제였던 조너선 스위프트(걸리버 여행기)가 설교했던 곳이다. 고잉 인피니트는 최근 암호화폐계의 제이 피 모건이라 불렸던 샘 뱅크먼프리드의 급부상과 몰락을 다뤘다. 1720년 조너선 스위프트는 풍자시 ‘거품’을 썼다. ‘이 나라는 너무 늦게 알게 되겠지. 여태 들어간 돈과 시간을 일일이 따져보며 그들의 약속은 바람일 뿐이라는 걸, 남해회사는 거대한 거품이었다는 걸’거시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제로금리는 짧은 기간 동안 응급처방용으로 타당하다. 시간이 지나면 가계와 기업의 재정상태가 나아지면서 경제도 균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로 금리가 지나치게 오랫동안 유지되면 온갖 기이한 사업들이 아무 의심도 받지 않은 채 자금을 끌어모은다. FTX도 그런 사업 중 하나였다.수많은 역사적 인물들이 화폐를 조작함으로써 통제권을 주려 했다. 이 모든 시도의 본질적으로는 공적 화폐의 사유화이며, 그 최신 사례가 바로 암호화폐다. 겉으로는 보통 사람을 위한 해방이라는 수사로 포장되어 있지만, 암호화폐는 결국 사적인 화폐다. 암호화폐에 대한 과열된 관심은 디지털시대 판 위조지폐에 가깝다. 기술 좀 안다는 몇몇이 자기들이 만든 토큰을 화폐라 부르면서 유통시키는 것이 결코 화폐의 미래가 될 수는 없다. 사실 암호화폐는 그럴듯하게 포장된 정교한 사기극에 가깝다. 그것은 민주주의 제도와 시장에 대한 대중의 신뢰가 역사적으로 가장 낮아진 시기를 절묘하게 파고들었다.비트코인의 총 발행량은 1960만 개이며, 이 중 93% 이상은 이미 채굴되었다. 나머지도 비트코인 채굴자에 의해 계속 채굴되고 있다. 비트코인으로 돈을 벌고 있는 건 바로 비트코인이 거래될 때마다 수수료를 떼어 가는 거래소, 그리고 현재 판매가보다 훨씬 낮은 가격의 비트코인을 획득한 자들이다.비트코인은 공급량이 한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다른 암호화폐들과 구별된다. 다른 많은 암호화폐들은 사실상 각기 다른 민간업체들이 자체적으로 만든 ‘집에서 찍어내는 화폐’에 불과하다. 비효율적 결제시스템을 블록체인 기술이 해결해 줄 거라는 주장은 근거가 없지는 않지만, 실제로 그렇게까지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기존 화폐로도 잘 작동하고 있는 그 거래 시스템에 굳이 새로운 형태의 화폐를 추가할 필요가 있을까? 블록체인 기술은 본질적으로 구식장부 기록방식의 디지털 버전에 불과하다. 처리속도가 매우 느리고 에너지를 과도하게 소모하는 이 기술은 현재 기술로 매시간 수조 달러 규모로 이루어지는 거래를 감당하기엔 확장성 면에서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역사적으로 봐도 진정 유용한 화폐가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조건 중 하나는 가치의 안정성이다. 비트코인의 공급량은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수요가 변할 때 가격이 요동친다. 금의 경우에서도 봤듯이 공급량이 고정된 자산은 수요가 변할 때 그에 맞춰 유연하게 반응할 수 없다. 결국 가격만 출렁거릴 뿐이다. 비트코인 가치가 다른 모든 자산에 비해 계속 오르고 있다면 그린스왑투자 누가 굳이 그걸 쓰려고 하겠는가? 비트코인은 공급량이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가치가 안정된 교환수단으로 기능할 수 없다. 결국 사람들은 그것을 거래로 쓰기보다는 시세차익을 위해 축적할 뿐이다. 화폐로 기능하기보다 암호화된 자산일 뿐이다. 암호자산이 투기나 도박에 딱 맞는 이유는 바로 극심한 가격변동성이다. 누가 변동도 없는 지루한 자산에 돈을 벌겠는가? 하지만 바로 그 변동성 때문에 암호자산은 결제수단으로도, 화폐로서도 제대로 기능할 수 없는 것이다.주식이나 채권은 실질적인 경제활동과 연결되어 있다. 그와 반대로 암호화폐는 오로지 대중 심리를 기반으로 거래되기 때문에 사실상 극단적인 투기수단, 즉 거래가 가능한 도박계약에 가깝다. 도박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흥분과 중독성을 제공한다. 하지만 도박과 달리 암호화폐 시장은 규제받지 않는다.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암호화폐는 대체로 가난한 일반 투자자들, 특히 분노에 X나 레딧에 집착하는 크립토브로(암호화폐에 열광하는 남성 투자자를 가르키는 신조어로 경멸하는 뉘앙스가 담겨있다)의 자금이 해외거래소를 운영하는 민간업체들에게 이전되는 결과를 낳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거래소들은 원래 암호화폐가 무너뜨려야 한다고 주장했던 바로 그 월스트리트 기업들의 지원을 받고 있다.자산 가격을 부풀린 채로 유지하는 가장 효과적 방법은 그 자산의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을 더 점점 더 많이 만드는 것이다. 비트코인 투자자들은 스스로 자산을 지키기 위해 월스트리트와 손잡고 비트코인을 일반 대중에 판매하는 루트를 뚫었다. 그 수단이 바로 상장지수펀드 ETF다. 비트코인은 새로운 형태의 화폐라기보다는 금융로비단체에 가깝다. 그리고 대부분 로비단체가 그렇듯 이들의 목적도 비트코인 소유주들, 즉 한정된 공급량으로 가장 큰 이득을 보게 될 사람들을 위해 당국에 압력을 가하는 것이다. 2024년 1월 광범위한 로비 끝에 SEC는 처음으로 비트코인 펀드를 승인했다. 비트코인은 언어로 따지면 에스페란토어가 세계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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